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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테니스협회 역대 회장을 살펴보면

기사승인 2024.03.04  06: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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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테니스협회장

1대 나추건 (1955.9월~1957.2) 재미사업가 정구협회분리

2대 강성태 (1957.3~1959.12) 상공부장관 국내대회 초석

3대 민관식 (1960.1~1960.12) 문교부장관 학교테니스부 활성화

4대 한상원 (1961.1~1961.12) 한국은행 수석부총재 데이비스컵 출전

5대 김시종 (1962.1~1965.1) 한일은행장 금융계 테니스 팀 창설 붐

6대 홍종문 (1965.2~1971.1) 대선제분 대표 국제대회 출전 후원, 장충코트 마련

7대 한준석 (1971.2~1972.1) 동양고속

8대 정우식 (1972.2~1973.1) 국회의원

9대 장상태 (1973.2~1975.1) 동국제강 회장 장충코트 클럽하우스 마련

10대 정우식 (1975.2~1976.7) 국회의원

11대 최형집 (1976.8~1977.1) 선박회사 임원

12대 류찬우 (1977.1~1978.1) 풍산금속 회장

13대 홍종문 (1978.2~1980.10) 조흥화학 대표

14대 이병목 (1980.10~1981.4) 백화양조 회장

15대 이종록 (1981.4~1984.1) 삼익주택 회장 후원, 퇴임시 기금 쾌척

16대 김덕영 (1984.1~1985.2) 국제그룹 부회장

17대 조중건 (1985.3~1989.1) 대한항공 회장 KAL컵투어, 86아시안게임,88올림픽

18대 조중건 (1989.2~1993.1) 대한항공 회장

19대 김두환 (1993.2~1997.1) 레오파드상사 대표.경기인출신 기금 모금

20대 김두환 (1997.2~2001.1) 레오파드 상사 대표

21대 박용덕 (2001.2~2002.7) 경기인 출신

22대 엄종일 (2002.9~2003.10) 새찬건설 회장

23~25대 조동길 (2003.11~2013.1) 한솔그룹 회장 ITF총회 유치, 여자투어대회 창설,테니스 주니어 육성

26대 주원홍(2013.2~2016.5) 미디어윌 고문

27대 곽용운(2016.8~2021.1) 재미테니스협회장

28대 정희균(2021.1~2023.9) 전북테니스협회장

 

우리나라 테니스의 수장인 대한테니스협회장은 한국테니스를 발전시키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해 왔다. 많은 후원을 하여 선수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선수 양성을 위해 연구하고 훈련시킬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다. 또한 선수들을 위해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출전 경비를 마련해주고 국내에 국제대회를 열어 상금과 랭킹 포인트를 확보할 수 있게 하였다.

테니스 인구 저변확대와 붐을 조성하는데 앞장서 온 것이 대한테니스협회장이었다.

역대 테니스협회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주로 재계의 유력인사들이다.테니스 조직 운영과 발전에 재력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의미하고 있다. 60여년 테니스협회 역사에서 최대 황금기는 KAL컵투어대회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치른 조중건 회장때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한 기초를 다진 회장은 강성태 회장, 민관식 회장, 홍종문 회장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테니스인이 아닌 회장들이 테니스협회를 맡아 조건없이 후원을 한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테니스의 밑거름이 되었다.

참고로 최장수 회장은 2003년 1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23~25대 회장을 맡은 조동길 회장이고 6대(65.2-71.1)와 13대(78.2-80.10)를 맡은 홍종문 회장과 김두환(97.2-2001.1,19대와 20대)이 그 뒤를 이었다.

이처럼 묵묵히 협회를 맡아 온 것도 우리나라 테니스 발전의 자양분으로 충분하다. 역대 회장들의 업적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초대 나추건 회장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사업가로 대한정구협회에서 테니스가 새로 출범할 때 회장을 맡았다.

   
▲ 강성태 회장

대한테니스협회의 정식 활동은 2대 강성태 회장때부터다.

강성태 회장은 경성제국대 법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26년 최초로 서구식 테니스를 도입하여 이를 보급하는 데 주력하였다.
대한테니스협회를 창설하는데 주역을 담당했고 57년 회장에 선임되어 활동하는 등 테니스발전에 공적을 남겼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재무부 관세국장에 보임되어 우리나라 관세행정체계를 마련하였고, 1953년 재무부차관으로 승진되었다.
1954년부터 1955년까지 상공부장관을 역임하였으며, 1956년 한국무역협회 회장과 1958년 제4대민의원 의원을 지냈다.
1963년 대한테니스협회에서 ‘강성태배(姜聲邰盃) 테니스대회’를 창설하였다.
1972년 직당장려상(稷堂奬勵賞)을 창설하여 테니스선수의 발굴과 육성에 주력하였다.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3대 민관식
1918년 개성에서 난 민관식 회장은 경기제일고보(현재 경기고)와 수원농대, 일본교토대를 졸업했으며 정계와 학계·체육계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3·4·5대 민의원, 6·1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71년부터 74년까지는 문교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체육계 쪽에서 의욕적인 활동을 벌여 한국 스포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장에 올라 71년까지 한국체육을 앞에서 이끌었고, 68년부터 70년까지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겸하며 서울 무교동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을 건립해 국가 엘리트스포츠 발전의 토대를 만들었다. 생전에 국가대표 훈련장 건립을 가장 자랑스러운 공으로 내세웠다.

축구와 육상, 테니스, 탁구, 정구협회 등 5개 종목에 걸쳐 단체장을 맡기도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테니스 마니아로 60년대 자신의 아호인 소강(小崗)을 딴 소강배 전국중고테니스대회를 창설해 테니스 발전에 애썼다. 특히 문교부장관 재직시절(72년)에 각급학교에 정구부를 테니스부로 전환시키고 운동부가 없는 학교에 테니스부를 만들어 학교 테니스의 토대를 마련했다. 당시 대통령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인물이었다. 

4대 한상원
한상원 회장은 한국은행 수석부총재시절 회장을 맡았다. 외국 나가기 어려운 시절에 선수들을 이끌고 데이비스컵과 아시아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이때부터 외국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5대 김시종
한일은행 행장 출신인 김시종 회장은 금융계 테니스팀을 활발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김두환 양정순 등 국가대표선수가 전일본선수권 혼합복식에 참가해 우승했다. 한국테니스가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시기였다.

 

   
 
   
 
   
 

6대 홍종문
홍종문 회장은 1912년 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국내 테니스인들에게는 부모 이상으로  뜨거운 애정을 기울인 한국 테니스의 대부이자 산증인이다. 두 차례에 걸쳐 8년 7개월 동안 대한테니스협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 테니스 발전을 위해 사재를 털어 장충코트를 만들었으며 자신의 호(長湖)를 따 만든 장호배테니스대회는 지금도 국내 유망주 발굴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 최초의 프로 선수였던 이덕희(재미사업가) 씨를 비롯한 왕년의 국가대표 출신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후원자'로 한결같이 고 홍종문 전 회장을 첫 손가락에 꼽고 있다. 홍 회장 시절 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했다.

7대 한준식
청와대 비서관,동양고속 임원 출신인 한준식 회장은 대통령의 지시로 협회를 맡게 됐다.

8대 정우식

5.16군사혁명때 서울시경국장을 지낸 정우식 회장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박정희 정부 시절에 제8대, 9대(경남 산청ㆍ함양ㆍ거창) 공화당 국회의원,제주도지사, 육영재단 상임이사를 지냈고 대한테니스협회장을 두번 역임했다.

   
▲ 장상태 회장
   
▲ 장상태 회장

9대 장상태

부산 동래고 출신인 장상태 회장은 1956년 동국제강에 입사한 이후 2000년 4월 4일 타계하기까지 45년 동안 철강 외길을 걸어온 철강인. 60년대에 국내 최대 민간 철강 공장인 부산제강소(연산 180만톤)를 건립하고, 국내 최초로 현대식 전기로 제강공법을 도입했으며, 1971년 국내 최초로 후판을 생산하는 등 70년대까지 동국제강을 재계 3위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장상태 회장은 동국제강, 연합철강(現 유니온스틸), 한국철강, 동국산업, 부산주공, 한국강업 등 포항제철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민간자본으로 대규모 철강사 7곳을 성장시키는 등 한국 철강산업의 발전을 주도해왔다. 대한테니스협회장 시절 장충코트 클럽하우스를 만들어 대회를 원만하게 치를 수 있게했다. 고인이 되었을때 운구차가 장충코트를 들렀다 장지로 향했다. 장 회장 후손들이 평소 선친의 테니스 사랑을 장례식때 절차를 갖춰 표했다. 

11대 최형집
76년 8월 정우식 회장의 사퇴로 세방석유 감사로 있는 최형집 부회장을 중심으로 임시 집행부를 구성해 77년 1월 정기대의원 총회때까지 협회 운영을 맡았다.

   
▲ 류찬우 회장

12대 류찬우
풍산금속 류찬우 회장은 정부의 권유로 회장을 맡았다. 바쁜 사업 관계로 테니스협회장 직무를 직접 수행하지 못하고 인척이 실무부회장을 맡았다. 

13대 홍종문
홍 회장은 6대 회장을 역임한 뒤 테니스인의 간청과 권유로 다시 회장을 다시 맡았다.

14대 이병목
백화양조 사장 재임시 협회장을 맡았다가 사장 퇴임으로 협회 운영의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물러났다. 재임시절 태능선수촌에 하드코드가 만들어졌다. 초등대회를 만드는데 노력했고 볼과 용구 개선 연구를 많이 했다.

   
▲ 이종록 회장
   
▲ 이종록 회장
   
▲ 이종록 회장
   
 

15대 이종록
삼익주택 회장으로 협회에 투자를 많이 했다. 서울시협회장을 지낸 뒤 회장을 맡아 협회에 테니스육성기금으로 1억원을 내놓았다. 호주 코치 카메론을 초청해 주니어들을 지도했고 장충코트를 하드코트로 바꾸는 재원을 댔다. 아시아테니스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했고 테니스 남녀 대표를 54일간 해외전지훈련을 시키는 등 힘썼다. 해태배 국제테니스대회를 열어 세계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했다. 협회 업무를 잘 했는데 정부에서 협회장을 전격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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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영 회장
   
▲ 테니스로 중국과의 물꼬를 튼 김덕영 회장

16대 김덕영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사위로 그룹의 부회장 재직시 협회를 맡았다. 회장을 맡자마자 84년 미수교국인 중국(당시 중공)과의 데이비스컵경기에 단장 자격으로 중국에 입국해 한중수교의 물길을 개척했다. 85년 국제그룹 해체로 협회장 자리를 내놓았다.


   
▲ 조중건 회장

17대 조중건
87년 KAL컵투어대회, 86아시안게임,88올림픽이 열린 한국테니스 황금기에 회장을 지냈다. 1년에 테니스를 위해 4억원 정도 투자했다.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23년 동안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빠져있었던 테니스를 정식종목으로 부활시켰다.
1952년 광주 포병학교 특별교육을 받을 때 고 박정희 대통령(당시 교관)을 알게 되어 한진그룹의 월남전 사업권을 확보하게 되었고 적자투성이인 대한항공공사 인수 권유를 받아 대한항공으로 키웠다.

테니스협회장 시절 대한항공 남자팀을 만들었고 아시아테니스협회장을 맡아 한국 테니스의 국제화에 앞장섰다.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노골드 사태에 직면해 협회를 재정비하고 국내 테니스 활성화를 위해 테니스프로화를 추진하다 사퇴했다. 사퇴후 테니스 발전 기금 1억원을 쾌척했다.

 

19대 김두환

대표 선수 출신인 김두환 회장은 조중건 회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협회의 회장 대행을 맡아 오다 94년부터 8년 간 수장으로 일해왔다. 이 기간동안 유일한 남자투어대회인 KAL컵 폐지, 실업팀 해체, 국제대회 축소 등 어려운 시절을 지냈다. 협회 운영과 국내대회 치르기에도 어려운 현실에서 한국마사회,국민체육진흥공단 후원으로 협회를 운영하고 15억의 기금을 마련했다. 재임중에 협회를 사단법인화해서 자립기반을 만들었다.


21대 박용덕

아시아테니스연맹 집행위원이기도 한 경기고- 서울대 출신 박용덕 회장은 86년 테니스협회 이사로 협회와 처음 인연맺었고, 90년부터 협회 부회장으로 지내다 회장을 맡았다.  정부와 기업의 인맥으로 테니스 후원을 이끌어 냈다. 테니스 지도자와 대한테니스협회 일부 이사 등 경기인들의 회장 재정 출연 문제를 걸고 넘어져 퇴진 요구를 받아 중도 사퇴했다.


   
▲ 조동길 회장

23-25대 조동길

고 이병철(삼성그룹의 창업주) 회장의 장녀인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의 삼남으로 지난 2002년부터 한솔그룹 회장을 맡았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대한테니스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국제테니스연맹, 아시아테니스연맹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한국 테니스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했다. ITF 총회도 유치하고 한솔오픈여자 투어대회를 창설했다.
연세대 테니스 동아리 출신이 주축이된 '한솔 수요회'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마니아. 96년부터 한솔여자테니스팀과 주니어를 육성하고 후원했다.

26대 주원홍 회장

육사코트 불법 조성

27대 곽용운 회장  

미디어윌 채권 민사소송 패소 

28대 정희균 회장

국회의원 출마로 중도 사퇴


테니스협회장과 시스템적 운영

우리나라 엘리트 테니스를 관장하는 대한테니스협회는 역대 회장의 재정 출연으로 운영되어 왔다. 특히 60~80년대에는 정부와 대한체육회의 지시에 의해 기업인 등이 정권 협조 차원에서 회장을 맡았다.

정부의 간섭은 양면적 측면이 있다. 간섭도 있지만 다른 면으로 김종필 총리 등 테니스마니아의 적극적인 측면 지원과 경제인들의 후원으로 협회가 운영되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선수 육성과 지원이 활발했다. 그에 따라 유진선 김봉수 노갑택 전영대 등 스타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협회에 대한 정부와 체육회의 간섭이 줄어들고 경제인들 또한 경기단체장을 맡을 필요성을 피부적으로 느끼지못해 협회 내부 인력으로 살림이 꾸려졌다.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이 2003년부터 협회장을 맡아 다각도의 테니스에 대한 투자를 한 것은 이례적이다. 테니스를 워낙 좋아해 오랜 투자와 관심을 보였다.

테니스인 대다수가 어려운 시기에 비인기종목에 좋은 회장을 모셔 운영하고 있는 만큼 서로 협력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형택과 임규태 등의 활약으로 데이비스컵 월드그룹에 진출했다. 

협회 산하 가맹단체와 경기인과 협회는 대한테니스협회의 존재이유 중 하나인 올림픽과 투어대회 그리고 그랜드슬램에 자동출전할 수 있는 선수 육성 시스템을 공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박원식 기자 editor@tennispeople.kr

<저작권자 © 테니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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