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더러 생존, 바브링카 등장, 원핸드 백핸드 부활, 나달 부상
시즌 첫 그랜드슬램인 호주오픈이 페더러 파트너인 스타니슬라스 바브링카와 중국의 리나가 우승하면서 1월 26일 화려한 막을 내렸다. 우승자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나달과 세레나 윌리엄스가 부상으로 우승컵을 잡지 못했고 페더러, 조코비치, 머레이, 샤라포바, 아자레나 등이 결승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테니스피플>에서는 그 이유를 8가지로 요약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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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브링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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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브링카 | ||
1. 바브링카가 나타났다
스타니슬라스 바브링카(스위스, 3위)는 늦은 나이에도 전성기가 찾아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년 전, 바브링카가 29위에 머물고 있을 당시의 나이는 27세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전성기를 맞이한 뒤 서서히 정점에서 내려오는 나이였다. 그런데 올해 29세의 바브링카는 생애 최초로 그랜드슬램 결승에 올랐고, 나달을 꺾으며 호주오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나달, 조코비치, 머레이보다 많은 나이지만, 그는 드디어 전성기가 왔다고 선언했다. 랭킹은 머레이와 페더러를 넘어 3위까지 뛰어올랐다.
그의 상승세는 지난해 호주오픈 탈락과 함께 시작됐다. 당시 17위였던 바브링카는 4라운드에서 조코비치를 이길 뻔 했다. 5세트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혈투를 벌이며 10-12로 패한 뒤, 그는 테니스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지난해 4월 망누스 노르만 코치를 만난 이후로는 더욱 강해졌다. 프랑스오픈에서 8강에 올랐고, US오픈에서는 머레이를 꺾고 준결승에 올라 조코비치와 5세트 접전을 벌였다.
이번 대회에서 두 번의 승리로 그는 드디어 정점에 올랐다. 조코비치와의 8강전 5세트에서 9-7로 승리하며 2007년부터 이어진 상대전적 14연패의 사슬을 끊어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나달. 12전 전패를 하는 동안 한 세트도 뺏어내지 못했던 천적이었다. 그러나 바브링카는 나달을 3-1로 물리치고 생애 첫 그랜드슬램 정상에 올랐다. 물론 나달의 부상이 변수로 작용했지만, 나달이 통증을 호소하기 전에도 이미 1세트를 따내고 2세트 2-0까지 앞선 상태였다.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달성한 나이로 따지자면, 2001년 윔블던을 제패한 고란 이바니세비치(크로아티아)의 29세 10개월에 이은 최고령이 된다. 이제 바브링카에게 주어진 과제는 스타로서의 압박감을 이겨내며 승승장구를 이어갈 수 있을지 여부다.
바브링카의 다음 시험대는 윔블던 대회다. 그가 가장 고전하던 대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1회전 탈락 3회, 2회전 탈락 1회의 수모를 겪었던 전력이 있다. 남자테니스 빅4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잔디코트에서도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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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샤르 가스케 | ||
2. 원핸드 백핸드 시대가 부활했다
50여 년 전 클리프 드라이스데일이 유행시킨 투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는 원핸드 백핸드를 서서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장차 페더러가 은퇴한 뒤에는 원핸드 백핸드가 희귀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원핸드 백핸드가 남자테니스에서 좋은 무기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16강에 오른 선수 중 10명이 원핸드 백핸드를 구사한 것이다. 게다가 8강에는 3명, 4강에는 2명이 오르더니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만약 페더러도 결승에 올랐다면 그랜드슬램 27회 연속으로 투핸드 백핸드 플레이어가 결승에 오른 기록이 깨질 뻔 했다. 페더러를 제외한 원핸드 백핸드 플레이어가 우승한 것은 10년만의 일이다.
이번 대회에서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이 원핸드 백핸드 옹호론자들의 힘을 실어주었다. 토미 로브레도(스페인, 16위)가 2경기 연속으로 원핸드 백핸드 플레이어간 대결을 성사시킨 것이다. 리샤르 가스케(프랑스, 9위), 바브링카와의 경기를 통해 그 백미를 보여주었다. 또 하나는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불가리아, 19위)가 보여준 나달과의 맞대결이다. 멋진 원핸드 백핸드 자세로 유명한 그는 8강전에서 나달을 몰아붙였다. 첫 세트를 따낸 뒤, 2~3세트에서 연속으로 타이브레이크 접전을 펼쳤다.
이번 대회에서 디미트로프는 톱플레이어로 성장할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켰고, 페더러도 건재를 과시했다. 그리고 바브링카는 원핸드 백핸드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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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더러 | ||
3. 페더러는 아직 죽지 않았다
비록 페더러가 준결승에서 나달에게 완패하고 말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가 보여준 실력은 아직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할 만 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가 고전할 것으로 예상됐던 조 윌프리드 송가(프랑스, 10위), 머레이와의 경기에서 확실히 향상된 기량을 뽐냈다.
이번 대회 내내 페더러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그를 괴롭히던 등 통증이 사라졌고, 새 코치 스테판 에드베리와 호흡을 맞추며 전열을 가다듬었기 때문이다. 또한 더 큰 라켓을 들고 나와 서브와 리턴에 파워를 더하기도 했다. 지난 2년간 지속됐던 불안요소들이 사라지자, 페더러는 다시 기운을 얻었다.
문제는 나달과 조코비치다. 조코비치와의 맞대결에서는 최근 3연패, 나달에게는 최근 8연패 중이다. 둘은 분명 페더러가 넘어야 할 산이다. 한명 더, 전성기를 맞은 바브링카를 이겨야 스위스 1인자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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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박 조코비치 | ||
4. 조코비치가 흔들리고 있다
조코비치는 한 선수에 대한 평가가 몇 시간 만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호주오픈을 지배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 3회의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에 실패했지만, 14회 연속 그랜드슬램 준결승 진출이라는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부터 28연승을 이어오고 있었고, 톱10 선수들과의 맞대결에서는 12연승을 질주하고 있었다. 게다가 보리스 베커 코치를 영입하며 세계 1위 탈환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8강전에서 바브링카를 만나기 전까지는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으며 완벽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5세트 접전 끝에 바브링카에게 패한 뒤에는 조코비치에 대한 호평이 자취를 감췄다. 8위 선수에게 당한 패배일 뿐만 아니라, 2009년 프랑스오픈 이후 처음으로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4회 연속 그랜드슬램 우승 실패. 4개월 전만 해도 세계 1위였던 선수에겐 너무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조코비치의 데이비스컵 스위스전 불참 소식이 전해졌다. 세르비아 팀 관계자는 “조코비치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친 것 같다” 고 설명했다.
여전히 조코비치는 톱플레이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의 부진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를 향한 불안한 시선은 오는 5월 열리는 프랑스오픈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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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나 | ||
5. 노장의 변신? 리나에게 물어봐!
대부분의 선수들은 30대에 접어들면 플레이 스타일의 근본적인 변화를 꺼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30세에 카를로스 로드리게스 코치를 만난 리나는 서브와 백핸드 그립을 바꾸는 선택을 했다. 이에 로드리게스는 “만약 30세의 선수에게 서브 그립을 바꾸라고 제안한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분명 ‘집에 가라’ 일 것이다” 라며 리나의 변화를 높이 샀다. 또한 로드리게스는 리나에게 좀 더 적극적인 네트플레이를 주문했고, 리나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변화가 7개월 전 은퇴 기로에 놓였던 리나의 재기를 이끌었다. 리나는 지난해 호주오픈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프랑스오픈 2회전에서 탈락한 뒤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당시 31세였던 리나는 6위로 떨어졌고,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후 절치부심하여 연말랭킹 3위로 마감한 리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이번 대회에 나섰다. 최대 고비는 루시 사파로바(체코, 27위)와의 3라운드였다. 2세트에서 매치포인트까지 몰렸지만, 사파로바의 백핸드가 라인에서 단 5㎝ 벗어난 덕분에 기사회생한 것이다. 시불코바와의 결승전에서는 1세트의 불안함을 극복하고 승리를 따냈다. 2011년 프랑스오픈 이후 개인통산 두 번째 그랜드슬램 우승.
이번 대회 우승으로 3위에 복귀한 리나는 2위 아자렌카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리나가 테니스계에 주는 교훈은 늦은 나이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큰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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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레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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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라포바 | ||
6. 여자테니스의 춘추전국시대가 왔다
호주오픈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세레나, 샤라포바,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2위) 중 한 명이 우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8강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대신 20위 이하의 선수 2명이 준결승에 진출해 그 중 1명이 결승전에 올랐다. 이번 대회뿐만 아니라 지난해 윔블던에서도 그랬다.
지난해 윔블던 파란의 주인공은 세레나를 4라운드에서 이기고 준우승을 차지한 사빈느 리지키(독일, 15위)였다. 이번 대회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시불코바 역시 샤라포바를 4라운드에서 이기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둘 모두 결승전에 오를 당시 랭킹이 24위였다. 지난해 윔블던 우승자 마리온 바톨리(프랑스, 은퇴)와 이번 대회 우승자 리나(중국, 3위)도 모두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레나와의 최근 4번의 맞대결에서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던 이바노비치는 이번 대회 4라운드에서 세레나를 물리쳤다. 세레나는 아직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지만, 최근 3번의 그랜드슬램에서 2번이나 8강전에 오르지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자렌카는 최근 상대전적 7연승으로 앞서고 있던 아그네쉬 라드반스카(폴란드, 4위)에게 8강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아자렌카는 2위 자리마저 리나에게 위협받고 있다.
미국의 차세대 에이스로 불리는 슬론 스티븐스(18위)는 금방이라도 톱10에 진입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3라운드에서 탈락하며 18위까지 떨어졌다. 대신 유진 부샤르(캐나다, 19위)가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부샤르는 준결승까지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며 31위에서 12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앞으로도 그랜드슬램 여자단식에서는 더 많은 이변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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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불코바 | ||
7. 단신이 장신을 이길 수 있다
최근의 테니스는 마치 농구같이 장신 선수들이 경기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WTA 톱100 선수 중 13명이 신장 183㎝를 넘는다.
키 161㎝의 시불코바는 여자테니스계에서 손꼽히는 단신으로, 톱50 선수 중에서는 가장 작다. 하지만 그는 이번 대회 준우승을 차지함으로써 그랜드슬램을 제패할 만한 체격과 파워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호주 언론은 “그동안 너무 작은 키로 인해 우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시불코바의 활약으로 놀라운 대회가 되었다” 고 평가했다.
24위로 대회를 시작한 시불코바는 3라운드부터 준결승까지 4경기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상대가 모두 16위 이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에서도 상대를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개인통산 첫 그랜드슬램 결승전에서 패하고 말았지만 랭킹 13위까지 뛰어오르며 톱10 선수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떠올랐다.
시불코바보다 작은 단 2명의 톱100 선수들도 이번 대회에서 선전했다. 신장 157㎝의 로렌 데이비스(미국, 60위)와 158㎝의 나라 구루미(일본, 64위)는 3라운드까지 올라 시드 배정받은 선수들과 접전 끝에 패했다. 이들이 호주오픈에서 준 교훈은 단신 선수들도 정상을 노릴 만 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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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라포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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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달 | ||
8. 부상과 컨디션이 승패를 좌우한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아무리 좋은 경기를 펼치고 있더라도, 갑작스러운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가 찾아오면 이길 수 없다. 그것은 2014 호주오픈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라파엘 나달(스페인, 1위),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 5위), 앤디 머레이(영국, 6위), 세레나 윌리엄스(미국, 1위)가 그것을 증명했다.
어깨부상으로 지난해 후반기에 결장했던 샤라포바는 이번 대회에서 고관절 부위의 통증을 호소했다. 이러한 몸 상태로는 4라운드에서 도미니카 시불코바(슬로바키아, 13위)를 이길 수 없었다. 특히 3세트에서는 1-6으로 힘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9월 허리수술을 받은 머레이는 재활치료 때문에 호주오픈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그는 이제 아프지 않다고 했지만, 로저 페더러(스위스, 8위)와의 8강전에서 허리를 움켜쥐거나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전감각이 부족했던 것은 분명 이번 대회에서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머레이가 그랜드슬램 우승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가능할 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다.
세레나와 나달이야말로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인한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4라운드에서 아나 이바노비치(세르비아, 12위)에게 패한 뒤, 세레나는 등 부상 때문에 기권할 뻔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경기를 중계하던 크리스 에버트(미국)는 세레나의 몸에 이상이 생겨서 파워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세레나의 부상은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그가 여자 테니스를 지배하는 건 어디까지나 건강할 때의 일이다.
나달에게도 몸 상태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다. 지난해 2월 코트로 복귀했지만, 아직도 무릎에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왼손에 잡힌 물집도 이번 대회 내내 그를 괴롭혔다. 개인통산 14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으로 피트 샘프라스(미국)와 어깨를 나란히 할 듯 했지만, 결승전에서 뜻하지 않은 등 부상을 당해 좌절되고 말았다. 이로써 나달의 컨디션 회복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14번째 그랜드슬램 정상 도전은 등 부상으로 인해 험난한 길이 될지도 모른다.
글 멜버른=방극용 기자, 박원식 박종규 기자 사진 멜& bgj@tennispeopl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