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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치기는 아주 훌륭한 연습 방법이에요. 벽은 거짓말을 못하니까 찬 대로 공이 돌아오거든요." 2002년 월드컵을 6개월 앞두고 조(組) 추첨을 위해 방한한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에게 "좋은 축구 연습 방법이 있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어떻게든 한국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지만 당장은 도움이 안 되는 고지식한 이야기만 이어졌다.
"선수들이 옛날보다 더 많이 뛰지만 기본이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아주 쉬운 패스를 놓치거나 실수하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기에 쉬운 기술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죠." 1970년대 축구 전술의 혁명이라고 했던 '토털사커'를 그라운드에서 구현했던 축구 천재는 지루할 정도로 기본기만 강조했다.
군사독재 정권이 주최하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나가기 싫다고 개인적으로 보이콧했던 이 원칙주의자는 원대한 꿈을 지닌 사람이었다. 1974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에 그쳤던 그는 공격과 수비라는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고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네덜란드의 '토털사커' 철학이 그라운드에서 한순간의 오차 없이 이뤄질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어했다.
스페인 축구 명문 바르셀로나에서 선수로 뛰고 감독도 했던 크루이프는 1979년 클럽 회장에게 유소년팀을 육성해야 원하는 축구를 언제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탄생한 바르셀로나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가 '라 마시아(La Masia)'다. 기숙사 건물 이름이 애칭이 됐는데, 이 '축구 농장(農場)'에서 7세부터 연령별로 모두 250명씩 꿈나무가 자랐다. 이들은 철저히 크루이프가 생각하는 '꿈의 축구'를 이룰 패스와 볼 터치 등 기본기를 집중 연마했다. '사람은 공보다 빠르지 않다''공을 소유하고 있으면 실점(失點)할 수 없다'는 그의 원칙에서 끊임없이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경기를 지배하는 바르셀로나의 '티키 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한다는 뜻)' 사커가 탄생했다. 운영 철학이 다른 클럽 회장들이 나타났어도 바르셀로나는 이 축구 농장에 매년 40억원 가까운 돈을 쏟아붓는 정성을 30여년간 이어갔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별명만 '무적(無敵) 함대'였던 스페인 축구 대표팀은 사상 최초로 2008 유럽축구선수권, 2010 남아공월드컵, 2012 유럽축구선수권 등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을 일궜다. 나란히 170㎝에 70㎏이 될까 말까 한 자그마한 체격이지만 '패스 마스터'로 통하는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바로 이 '축구 농장' 출신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라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도 이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축구의 기본을 익혔다.
우리는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것처럼 달려들었고, 단기간의 노력으로 기적처럼 4강에 올랐다. 하지만 세계 수준의 한국 축구를 언제든 재현할 수 있는 꿈나무를 키워내는 '한국의 축구 농장'을 꿈꾸는 이는 없었다. 요즘 우리 축구를 보면 승패와 관계없이 10년 전 경기 내용이 아득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여겨진다. 조선일보 민학수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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